내용요약기업 정체성·생존전략 고민속 지속가능성 내재화한 정반합 진화
[한스경제=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장] 글로벌 정치·경제적 변화 속에서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의 위상이 흔들리며 기업 경영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은 ESG의 중요성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과 EU의 ‘옴니버스 패키지’ 채택으로 ESG 흐름이 약화되고 후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때 ESG 경영의 선구자로 불렸던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 조차 ESG란 용어가 정치적으로 무기화되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ESG에 대한 피로감과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인류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자본주의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현실 속에서 ESG의 지속가능성이라는 핵심가치는 변함이 없다. 지속가능성은 일시적 트랜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책임이자 시대정신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일찍이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그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단순한 객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는 존재로 규정하며, ‘인간’이라는 관념적으로 고착된 표현 대신 ‘현존재(Dasein, 現存在)’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현존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본질을 탐색하는 미완의 존재로,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성을 통해 스스로를 형성해 나간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철학적 통찰은 ESG의 지속가능성 개념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ESG의 핵심 목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는 단순히 환경적 또는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 경제적 측면을 포함하는 지속가능경영(Triple Bottom Line, TBL)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영국의 작가이자 기업 지속가능경영의 창시자인 존 엘킹턴은 1994년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람(People), 지구(Planet), 이윤(Profit)이라는 세 가지 요소간의 균형 맞춘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속가능경영은 단기적인 이익을 넘어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 기업가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ESG 경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ESG가 주로 비재무적 성과에 집중하는 반면, 지속가능경영은 경제적 가치와 환경·사회적 가치를 균형 있게 추구하며, 기업의 본질적 목적과 더욱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현실적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는 기업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되며, 마치 하이데거가 인간의 본질을 ‘세계 내 존재’로 규정했듯이, 기업 또한 ‘자연과 사회 내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함을 시사한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기업은 단순한 경제적 실체를 넘어,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형성하는 존재다. 기업은 과거의 경험을 성찰하고, 현재의 책임을 수행하며,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본질적 의미를 찾아간다. 따라서 ESG를 규제 준수나 투자 지표로만 인식한다면, 기업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채 피상적 외양에 갇히고 말 것이다.
반면 지속가능경영은 기업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숙고하고, 장기적인 생존전략을 고민하는 과정이다. 이는 하이데거가 강조한 현존재의 본질적 시간성과 맞닿아 있다. ESG 경영이 지속가능성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사고방식이다.
지난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옴니버스 패키지’의 핵심 조치 중 하나는 EU 기업들의 ESG 규제부담을 완화하고, 글로벌 경제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있다. 이는 ESG 경영 강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보완하려는 전략적 결정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ESG를 규제로만 인식하던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을 기반으로 IRO(영향, 위험, 기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전략적 경영패러다임을 정립해 적응해 나가야 한다.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은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선다. 이는 곧 “어떤 기업으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지속가능경영은 확장된 사회적 책임 이행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긴 여정이다.
ESG 경영이 하나의 확고한 개념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정(正)-반(反)-합(合)의 단계적 진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모델로 발전해야 한다. 현재 ESG 경영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중요한 전환기를 맞아, 기존의 한계를 보완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과정에 있다.
어쩌면 글로벌 ESG경영이 속도조절에 들어간 지금이야말로, 우리 기업이 ESG선도국가들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도약의 순간이다.
기업은 단기적 이익에 매몰된 경제적 주체를 넘어, 지속가능성을 내재화한 전략적 경영이 필요하다. 미래세대와 환경을 고려하고 사회 공동체와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책임있는 ‘계속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