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2024 CDP 보고서 발간 앞두고 주요 데이터 선공개
기후리스크 인식 증가...이사회 전문성은 ‘절반’ 수준, 공급망 감축도 ‘과제’
내부탄소가격 글로벌比 크게 낮아...리스크 정량화 위한 제도 개선 ‘시급’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한국위원회(위원장 장지인)가 오는 30일 ‘2024 CDP 한국 보고서’ 발간을 앞두고, 국내 기업의 기후 대응 수준을 보여주는 핵심 데이터를 28일 선공개했다. 이번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거버넌스 전문성 ▲온실가스 배출 구조 ▲기후전환 전략 등 주요 지표와 함께 재생에너지·수자원·생물다양성·플라스틱 등 환경 전반의 대응 수준을 평가했다.
CDP는 전 세계 2만40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는 글로벌 환경 정보 공개 플랫폼으로, 최근에는 IFRS S2·TNFD 등 국제 공시 기준을 이행하기 위한 실질적 도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측정해야 관리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기후 전략, 리스크 대응 정보 등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공개해 왔다.
국내에서는 공급망을 포함해 총 865개 기업이 CDP에 참여하며, CDP 한국위원회 사무국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운영하고 있다. CDP 한국위원회의 이번 보고서는 응답한 국내 기업 중 통합 질의서의 모든 항목에 응답하고 내용을 공개한 239개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 국내 기업 87% 기후 리스크 식별...전년比10%p 증가
기후 리스크는 기후변화로 인해 기업·금융기관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말한다. 이를 식별하는 것은 기업 전략 수립의 첫 단계이자, 국제 공시 기준의 핵심 요건에 해당한다. IFRS S2 등 국제 공시 기준 역시 리스크 식별을 기반으로 한 전략과 재무 영향의 공시를 핵심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87%가 중대한 기후 리스크를 식별하고 있는데, 이는 전년 대비 10%p 증가한 수치다. 가장 많이 인식된 리스크 유형은 ▲탄소가격, 배출 규제 등 정책 리스크 ▲단기 물리적 리스크 ▲시장 리스크 ▲장기 물리적 리스크 순이었다.
국내와 글로벌 기업을 비교하면 모두 ‘정책 리스크’와 ‘단기 물리적 리스크’를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인식했다. 다만, 글로벌 기업은 ‘시장 리스크’ 보다 ‘장기 물리적 리스크’를 더 크게 인식한 반면, 국내 기업은 ‘시장 리스크’를 3순위로 인식하는 차이를 보였다.
◆ 이사회 내 기후 전문성 ‘절반’ 불과...“의사결정 역량 실효성 확보해야”
기후 리스크가 기업 전략과 재무계획에 실질적으로 반영되기 위해 이를 판단하고 감독하는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92%가 이사회 도는 경영진 차원에서 환경 요소를 관리한다고 응답했지만, 실제로 기후 관련 전문성을 보유한 경우는 52%에 불과해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평균인 87%보다 35%p 낮다.
CDP는 이사회 또는 경영진이 ▲환경 관련 직무 경력 ▲관련 학위 ▲기후 관련 교육 이수 ▲환경위원회 참여 등의 조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할 경우 ‘전문성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하다.
이를 분석한 서승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선임연구원은 “단순히 제도적 틀을 갖춘 것을 넘어, 기후 이슈가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점검할 시점”이라며 “형식적 관리 체계를 넘어 실질적인 전문성과 실행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 스코프3, 스코프1+2의 ‘8배’...공급망 감축 전략 ‘시급’
국내 234개 기업의 스코프1과 스코프2 배출량은 총 2조7500억톤(이산화탄소환산톤, tCO2e)로 이 중 87%가 국내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망 등 기타 간접배출까지 포함한 스코프3 배출량은 약 21조7900억톤으로, 스코프1과 2 배출량의 약 8배에 달하며,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89%를 차지했다.
스코프3를 보고한 기업은 2023년 127개에서 지난해 158개로 24% 증가했지만, 전체 응답 기업에 대한 보고 비율을 따져보면 68% 수준에 그쳤다. 이는 스코프3에 대한 데이터 수집이 어렵고 산정 방법의 복잡성, 협력사 정보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많은 기업이 공급망 배출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다연 책임연구원은 “스코프3는 전체 배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나 여전히 많은 기업이 선별적으로 보고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글로벌 고객사와 투자자들이 공급망 투명성과 협력사 감축 관리 체계를 갈수록 더 요구하는 만큼, 기업은 밸류체인 전반의 감축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SBTi 등 글로벌 기준은 스코프3 관리 없이는 ‘넷제로’ 목표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는 국제 공시 기준과 ESG 평가에서도 핵심 요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특히 CDP 한국위원회는 기업들의 전력 사용과 관련된 스코프2 감축의 핵심 수단으로 재생에너지를 강조했다. 2024 CDP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응답 기업의 전체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11%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 대비 1.3%p 증가한 것이나 국내 사업장 기준 사용률은 5%에 그친 것이다.
RE100에 참여한 국내 36개 기업의 재생에너지 평균 사용률은 24%로 전체 평균보다는 높았다. 그러나 국내 사업장 사용률이 12%, 해외 사업장 사용률은 59%에 달해 재생에너지 조달이 해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는 국내 조달 수단의 제약과 시장 기반이 미비한 상황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승연 선임연구원은 “기업의 스코프2 감축 전략이 실절적인 실행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등 제도적 지원과 공급 여건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 내부 탄소가격, 글로벌과 격차 커...국제 기준 맞춰 대응 필요
기업은 투자, 생산 및 소비 패턴의 변화, 잠재적 기술 발전, 미래 배출 저감 비용의 재무적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내부 탄소가격을 활용한다. 국내 기업의 내부 탄소가격 도입률은 48%로 절반 가까운 기업이 이를 활용하고 있으나, 그 기준이 글로벌과 동떨어져 있어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CDP 한국위원회가 기업의 내부 탄소가격을 분석한 결과, 국내 기업은 tCO2e당 1~10달러, 글로벌은 60~90달러로 설정한 비율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 내부 탄소가격 설정 범위에 차이를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30년 적정 탄소가격이 75달러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CDP 한국위원회는 이 같은 국내외 격차의 배경으로 국내 배출권 거래제의 상대적으로 낮은 시장 가격이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탄소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형성되면서, 저탄소 투자를 유도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려는 정책 본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IFRS S2 기준에서는 내부 탄소가격을 ‘기후 리스크의 재무적 반영 수단’으로 간주하며, 공시 항목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기업이 기후 리스크를 얼마나 정량적으로 파악하고 실제 경영 전략에 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라는 의미다.
관련해서 김정석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책임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은 아직 기후 리스크를 비용으로 전환해 경영 전략에 반영하는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며 “정교한 탄소가격 설정과 적용 범위 확대, 그리고 재무 전략과의 통합적 연계를 조속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