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 20% 수준
이사회 구성 ‘남성 중심’...권고 '무시’
전자투표 ‘미실시’·집중투표제 ‘미도입’
한화세미텍·SK하이닉스 '갈등'…사업보다 앞선 감정 대응 지적
|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 한화세미텍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한미반도체가 이사진 구성 및 다양성과 독립성, 전문성 등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의 ‘제왕적 경영 체제’가 사업 및 네트워크 유연성을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4일 한미반도체 2024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핵심지표 준수율은 20.0%에 그쳤다. 지난해 26.7%에서 무려 6.7%p(포인트)나 떨어졌다.
지배구조 핵심지표 준수율 15가지 항목 중 ▲현금 배당 관련 예측 가능성 제공 ▲내부감사기구에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 존재 여부 ▲경영 관련 중요 정보에 내부감사기구가 접근할 수 있는 절차 마련 등 3개만 준수했다. 지난해에는 전자투표를 실시했지만, 올해는 진행하지 않으면서 준수율이 6.8%p나 하락했다.
이사회 분야에 속한 6가지 항목을 모두 지키지 않았다. ▲최고경영자 승계 정책 마련 및 운영 ▲위험 관리 등 내부통제정책 마련 및 운영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인지 여부 ▲집중투표제 채택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에 책임이 있는 자의 임원 선임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 수립 여부 ▲이사회 구성원 모두 단일성이 아닌 등이다.
특히 이사회의 독립성과 다양성이 미흡했다. 한미반도체 이사회는 사내이사 2명과 사외이사 1명으로 구성됐는데, 모두 60~70년대생의 남성으로 남성 중심의 이사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국은 다양성을 위해 단일성을 비롯해 단일국적도 피하라고 권고한다. 한미반도체는 자산 총액 2조원 미만으로 자본시장법 제165조 20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사회 다양성은 많은 기업이 준수하고 있다.
ESG행복경제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시총 250대 기업 중 87%가량은 이사회 내 다양성을 준수했다.
또한 곽 회장의 수족인 김민현 한미반도체 사장이 이사회 의장까지 겸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사회의 공정성과 독립성 도모를 위한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답변을 했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지 않지만, 오너의 최측근이 이사회 의장 자리에 있다는 점은 독립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사진이 3명으로 소수인 점, 구성원 절반 이상이 사내이사인 점 등도 문제다. 사외이사진이 극히 적을 경우 안건에 있어 찬반 투표가 무의미한 셈이다. 최근 3년간 한미반도체 이사진의 안건 찬성률이 100%에 달했다.
전문성 역시 고루 갖추지 못했다. 곽 회장은 경영, 김민현 사장은 영업·연구개발 총괄, 이가근 사외이사는 경영지원 및 자문을 맡고 있다.
◆시장 환경 급변, 네트워크 강화해 유연성 발휘해야
일각에서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한미반도체의 거버넌스 및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한미반도체는 최근 한화세미텍과 갈등을 겪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8년간 TC본더를 독점 공급했는데, SK하이닉스가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 420억원 규모의 한화세미텍의 TC본더 12대를 주문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TC본더 납품가 28%인상과 무상으로 지원했던 고객서비스(CS)도 유료화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와 함께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자사 특허가 무단 적용됐다며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한미반도체는 또 다른 대응에 나섰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아워홈을 인수하면서 올해 말까지 계약됐던 한미반도체 단체급식 계약을 6월에 조기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한미반도체와 한화 간 갈등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한미반도체 출신 연구원이 한화세미텍으로 이직하자, 핵심기술 유출(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법 위반) 의혹 등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거버넌스를 강화해 유연성 및 네트워크를 제고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제한적 주주 권리…집중투표제 미도입
주주의 권리 제고를 엿볼 수 있는 지표도 좋지 않았다. 당국은 의사결정권 보장을 위해 ‘주주총회 4주 전 소집 공고’와 ‘주총 집중일 이외 개최’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상법상 의무 기간인 2주 전에 소집 공고를 냈다.
주총 분산을 위한 ‘주총 집중일’을 피하라는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집중일에 주총을 개최했다.
집중투표제도 도입하지 않았다. 이 제도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다.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보유하고 있는 지분의 숫자만큼 선출할 이사 수와 동일한 수의 의결권을 부여받는다.
예컨대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당 3개의 의결권이 부여된다. 이를 통해 대주주가 지배하는 이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미반도체는 “정관에 의거해 집지중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상법(제363조의 2 및 제 542조의 6)에 따라 소액주주의 이사 후보 추천 권리가 보장돼 있다며 “일정 비율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이사 선임 과정에 대한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주주환원은 적극적이다. 지난달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3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5월 기업가치제고 계획(밸류업 계획)에서 비과세 배당과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오는 2026년 149억원을 배당해 개인주주가 15.4% 원천징수 없이 배당금을 수령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