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IPO 심사 기준 강화·투자심리 신중...VC의 전략적 선택
AI 확산·전력 수요 증가...에너지 인프라 핵심 산업화
사업 성과 증명 과제 “상용화·스케일업이 다음 관문”
|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 벤처 투자심리가 움츠러든 가운데서도 기후테크와 재생에너지 스타트업에 대한 기대감은 계속되고 있다.
국내외 벤처투자업계는 여전히 신중 모드다. 미국과 유럽, 한국 모두 상장(IPO) 심사 기준을 높이고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기조에 자금시장도 움츠러들었다. 국내 코스닥·코스피 시장의 경우 매출, 수익성, 시가총액 등 재무 요건과 지배구조, 내부 통제 등 비재무 요건까지 다방면에서 심사가 까다로워졌고 이로 인해 스타트업 투자회수(EXIT) 기대감도 예년보다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도 벤처캐피털(VC) 업계는 기후테크와 재생에너지 분야에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환경·에너지·지속가능분야 스타트업의 국내 자금 조달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약 2227억원으로 전년 대비 148% 증가했다. 전체 스타트업 투자시장 침체와 대조적으로 환경기술 성장성에 대한 신뢰가 투자를 견인한 결과다.
최근 인공지능(AI) 발전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전력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신설과 대규모 AI 연산 인프라로 인한 에너지 수요 급증은 산업계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용 전력수요가 지금의 두 배 이상(945TWh)으로 증가할 것이라 전망하며 주요 선진국 전체 전력 소비 증가분의 20% 이상이 데이터센터에서 비롯될 것으로 내다봤다. IMF 역시 인공지능·클라우드 산업의 폭발적 수요가 앞으로 전력공급 인프라의 급속한 확충을 필요로 하며 이에 정책·민간 협력이 필수적이라 분석했다.
전통 제조업 기반 에너지산업에서도 신재생에너지가 빠르게 시장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태양광·풍력·배터리 등 재생에너지 공급 및 저장 기술투자도 동반 상당한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재생에너지 시장 규모는 2023년 1.2조달러에서 2030년까지 연평균 17.2% 성장할 전망이다. 이에 국내 실리콘밸리 및 주요 VC 펀드는 기존 IT·바이오 영역 투자경험을 바탕으로 기후테크 영역에 새롭게 자본을 집행하고 있다.
VC가 기후테크·재생에너지에 주목하는 이유는 에너지 수요의 구조적 증가 외에도 정책 변화 및 탄소중립 패러다임에서 찾을 수 있다. 전 세계적인 넷제로 목표와 정부 주도의 탄소중립 정책 강화. 유럽·미국 IRA 정책, 한국·중국의 탄소감축 예산 확대 등이 주요 배경이다. 또 기후위기에 따라 ESG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탄소배출권, 탄소세, 지속가능보고서 의무화 등 친환경 경영이 필수 경영트렌드로 부각된 점도 VC가 눈여겨보는 흐름이다.
이에 글로벌 VC 펀드, 연기금, 민간자본 등 대형재원이 미션 투자로 기후·에너지 분야에 집중하면서 기술혁신 투자재원을 확대하고 있다.
정책 측면도 기후재생·재생에너지 분야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다. 정부는 중소·벤처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탄소중립미래전략회의 등에서 기후테크 기술의 사업화 실증, 국제 시장 인증 확대, 민·관 협력 R&D 과제 지원을 병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스타트업 행사 COMEUP에서도 처음으로 ‘클라이밋 세션’을 마련해 기후기술 및 에너지 분야 스타트업의 글로벌 협력·투자 유치 활동을 뒷받침한다.
글로벌 트렌드 역시 유사하다. 미국·유럽은 재생에너지 발전(태양광·풍력·수소 등), 에너지 저장 및 분배, 그린수소, 신규 탄소포집(CCUS) 기술 등에 집중하고 투자사들은 후속투자, 조인트벤처 설립, 해외진출 지원 등 다양한 전략적 지원을 병행한다.
시장에서는 VC 투자잔디가 넓어진 만큼 “이제 성장은 실적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낮은 금리와 산업혁신 바람을 타고 초기·중기 투자(시드~시리즈B)까지는 활발했으나 기술·제품의 상용화 및 수익화, 대규모 프로젝트 구현 등 스케일업 단계의 ‘데스밸리’가 투자회수의 변수가 되고 있다. 특히 시리즈B 단계에서 투자가 전년 대비 29% 이상 급감했고 성장단계에서도 간헐적으로만 자본이 공급되는 양상이다.
VC 업계는 “혁신성만으로는 안 된다. 가시적 시장성과, 수익모델의 지속가능성, 정부·지자체와의 전략적 협력 등 현실적인 성장 증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IPO 심사 강화로 인한 상장 지연, 회수 불확실성에 대한 구조적 부담이 반영된 결과다.
따라서 기후테크·재생에너지 스타트업은 기술적 혁신뿐 아니라 수익, 매출, 시장확장성, 고용창출 등 실질적 사업성과를 입증해야 다음단계 투자와 IPO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글로벌 경쟁을 앞두고 정부와 산업계, VC가 긴밀하게 연계해 실증·상용화·스케일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정치·정책 불확실성 완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에너지 가격, 시장규제 변화 등에 대한 능동적 대응도 변수다.
VC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그린워싱’ 수준의 홍보성 기술이 아니라 실질 성장과 환경 편익을 동시에 증명하는 혁신문법이 시장 표준으로 자리잡을지 주목된다”며 “기후테크·재생에너지 분야는 이미 산업안보와 경제성장의 ‘빅테마’로 부상했으며 기술혁신 기업과 VC의 ‘실력 증명’이 올 한 해 시장의 진짜 변화”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