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기업 경영의 언어는 언제나 숫자였다. 매출액, 이익, 부채비율, 주가수익비율(PER) 등 모든 수치는 기업의 현재 상태와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이 숫자들은 눈에 보이고 셀 수 있는 ‘실수(實數)’의 세계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이 보이는 실수만으로 기업을 판단하지 않는다. 2020년 기준 S&P 500 기업의 기업가치 중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하며(출처: 오션토모), 유형자산을 압도한 지 이미 오래다.
특히 이 무형자산에는 단순히 수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ESG 경영, 즉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오늘날 기업 경영의 새로운 평가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ESG가 재무제표에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대응 및 탄소배출 감축, 인권 보호 및 산업 안전, 이사회 다양성 및 투명성 등을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이는 재무지표처럼 단 하나의 수치로 ESG를 단정해 보여주는 직관적인 지표가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ESG는 기업의 신뢰와 이미지, 그리고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눈에 쉽게 보이는 재무성과와 달리,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이는 기업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이자 그 중요성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전통적인 재무 중심의 ‘빈 카운터(Bean Counter)’ 관점에서는 ESG 요소가 당장의 실질적 가치나 수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주주 자본주의의 한계를 배경으로 등장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시대에는 ESG가 장기적 지속가능성과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글로벌 경영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수학의 ‘허수(虛數, imaginary number)’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허수란, 수학적으로 두 수를 곱했을 때 -1이 되는 수를 의미한다. 허수라는 개념은 처음에는 존재 자체가 의심받았다. “제곱해서 –1이 되는 수가 어떻게 있을 수 있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수학자들은 새로운 숫자 를 도입했다. 실수(實數)만으로는 결코 다가갈 수 없었던 영역이 이 허수를 통해 새롭게 확장된 것이다.
그 결과, 실수와 허수가 만나 탄생한 ‘복소수’는 1차원 직선 위의 세계를 수직선과 수평선이 교차하는 2차원 평면으로 확장시켰다. 전기회로의 진동, 통신 신호의 파동, 물리학의 회전 운동처럼 복잡한 현상들이, 허수 없이는 풀 수 없는 핵심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무성과였다. 과거에는 이러한 재무성과(실수)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비재무성과인 ESG(허수)를 함께 고려해야 비로소 기업의 지속가능성, 즉 복소수로서의 가치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ESG라는 ‘보이지 않는 수’를 포함하지 않으면 기업 가치를 온전히 측정할 수 없다. 이는 단순한 필요조건을 넘어 필수적인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때문에 ESG는 기존의 재무적 틀로는 제대로 설명되기 어렵지만, 기업 경영의 새로운 해석과 확장을 이끄는 기반이 된다.
실수가 허수를 만나 수학과 과학을 확장하는 복소수의 세계를 열었듯, ESG를 경영에 내재화하는 기업만이 미래라는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다.
또한 ESG는 규제와 사회적 압력에 대응하는 방패이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여는 나침반이다. 글로벌 투자기관은 ESG 점수가 낮은 기업에 자금을 배분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도 탄소중립,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공급망 투명성 등 비재무전략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ESG는 더 이상 경영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시대다. 허수가 실수와 결합해 회로를 설계하고 파동과 진동을 해석하며 시스템 균형을 잡는 것처럼, ESG도 재무성과와 결합해 위험을 관리하고 기회를 창출하며 지속가능한 경영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ESG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국, 허수가 실수와 함께 수학과 과학의 더 넓은 세계를 설명하듯, ESG도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지만 기업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숨은 숫자’다. 따라서 이를 외면하는 기업은 미래의 변수 앞에서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숫자인 ESG와 허수는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 가치를 더욱 완성도 있게 만 들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무성과와 ESG가 결합해야만 진정한 기업 가치가 완성된다.
이제 ESG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경영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 초불확실성시대에 기업이 생존과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