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장 | 한때 기업 경영의 최우선 목표는 ‘이윤 극대화’였다. 재무성과는 경영의 핵심 지표로 간주됐고, 대부분의 전략과 의사결정은 손익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경영 시스템은 최근 ESG라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ESG는 단순한 기업 가치관의 전환을 넘어 전통적인 재무중심 경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기술적 붕괴’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기서 ‘기술적 붕괴’란 기존의 기술이나 시스템이 혁신적 기술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어, 더 이상 기능하거나 생존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실제로 오늘날 블록체인 기술은 중앙 인증기관의 존재 가치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디지털 플랫폼과 공유경제의 급속한 확산은 기존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흔들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기술의 발전은 화석연료 기반 전력산업의 입지를 빠르게 약화시키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ESG는 비재무적 성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무대응은 기업이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결여한 존재로 인식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력 상실이라는 구조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ESG는 단순한 윤리적 이미지 관리의 수단을 넘어 지속가능성, 사회적 책임, 그리고 투명한 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급격히 강화되는 시대에 기업 생존과 미래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인권 존중, 투명경영 등은 더 이상 기업의 부수적 가치가 아니다. 이들 ESG 요소는 경영 의사결정과 자본 배분의 중심에 자리하며, 시장 경쟁력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특히 기후 대응은 기업의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과제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기존 화석연료 기반 자산이 잇따라 좌초자산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과도한 탄소배출 기업은 투자자 신뢰 상실은 물론, 강화되는 정부 규제와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배제 등 복합적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비용-수익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던 기후 관련 변수들이 핵심 경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영 차원의 조정을 넘어, 기업의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구조적 전환을 요구한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산림전용방지법(EUDR), 에코디자인규정(ESPR), 택소노미(Taxonomy) 등은 물론, 각국의 탄소세 도입과 같은 규제들은 단순한 법적 준수의 범위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산업구조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시장 접근의 전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기업 생존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또한 인권과 산업안전 문제는 더 이상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부차적 사회적 책임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인권 침해가 드러나는 즉시 소비자는 신뢰를 철회하고, 투자자는 자금을 회수한다. 국내에서도 과거 사회적 비난에 그쳤던 중대재해 발생에 대한 공시의무가 강화되고 법적 처벌 강도가 높아지면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 기반을 약화시킨다. 특히 MZ세대 투자자와 소비자들은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윤리적 리더십, 이사회의 다양성 등까지 평가기준에 포함하며, 이들의 가치관은 시장의 흐름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ESG 요소들이 기업평가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면서, 단순한 정량적 재무지표만으로는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비재무적 성과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 생존 가능성을 좌우하는 본질적 지표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ESG는 더 이상 윤리나 규범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기술 체계이며, 경영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시키는 동력이다. ESG가 야기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기술적 붕괴'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시장에서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
ESG의 본질은 ‘성장의 부정’이 아니라 ‘성장의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에 있다. 익숙한 자본과 성장논리를 넘어,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지속가능성의 원리 속에서 새로운 ‘성장 방정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경영기법의 조정이 아니라, 경영 패러다임 자체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단기적 성과 지표에 집착할수록 경영은 숫자에 가려 진정한 지속가능성과 미래가치를 놓치기 쉽다. 지금 이 순간에도 ESG는 시나브로, 경영의 ‘기술적 붕괴’를 거쳐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