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흔히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와 ‘법을 통한 지배(Rule by law)’로 구분된다. 두 개념은 겉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국가 운영의 철학과 권력의 작동 방식에서는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Rule of law’는 법이 권력을 제약하고, 권력 위에 존재하는 규범으로서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원칙을 의미한다. 반면 ‘Rule by law’는 권력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법을 활용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 경우 법은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통치의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며, 그 순간 법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ESG 경영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이와 유사한 구분이 나타난다. 기업의 ESG 접근 방식은 ‘Management of ESG’와 ‘Management by ESG’로 나뉜다.
전자가 ESG의 본질을 경영 판단과 의사결정 구조 자체에 내재화하는 접근이라면, 후자는 ESG를 전략 실행이나 성과 관리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에 가깝다. 두 개념은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ESG를 바라보는 경영 철학과 책임 구조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문제는 상당수 기업의 ESG 활동이 여전히 ‘Management by ESG’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ESG 위원회 설치, 보고서 발간, 각종 평가지표 관리 등 외형적 장치는 확대되고 있지만, 이러한 체계가 기업의 전략 수립이나 투자·사업 의사결정 과정과 구조적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ESG가 이처럼 경영의 주변 기능으로 인식될 때 한계는 분명해진다. ESG가 평가지표 대응이나 규제 리스크 관리의 수단으로 취급될 경우, 기업의 관심은 단기적 평판관리와 공시 충족 수준에 머물게 된다. 그 결과 ESG 활동은 외형적으로는 확대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영 판단 구조와 분리된 채 작동하는 ‘무늬만 ESG’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Management of ESG’는 ESG의 본질을 기업의 전략과 자본 배분, 리스크 관리, 성과 평가체계 전반에 구조적으로 통합·내재화하는 접근이다. 이 경우 ESG는 특정 부서가 관리하는 기능이 아니라, 투자 판단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공급망 관리, 인재 전략 등 기업의 핵심 경영 의사결정을 관통하는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지금, ‘Management of ESG’로의 전환이 불가피한가.
첫째, 제도 환경이 ESG를 더 이상 ‘선언’의 영역에 두지 않고, 이사회와 경영진의 ‘판단 책임’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SG 공시 기준의 고도화와 이사회 책임 강화를 둘러싼 법·제도 논의는, ESG를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관리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 자체를 규율하는 요소로 재정의하고 있다.
둘째, 자본시장의 기업 평가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ESG 점수나 등급이 기업 평가의 보조지표로 활용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ESG 요소가 기업의 현금흐름 안정성, 자본비용, 중장기 성장성에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핵심 평가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셋째, 투자자 시그널 역시 분명해지고 있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ESG를 더 이상 ‘윤리적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ESG는 리스크 관리와 가치창출을 설명하는 하나의 경영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투자자들이 묻는 질문은 이제 “ESG 위원회가 존재하는 가”가 아니라, “이 기업은 ESG 리스크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이 실제 의사결정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 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ESG는 선택 가능한 경영 트렌드가 아니라, 기업의 판단 구조 자체를 재편하도록 요구하는 구조적 압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Management by ESG’에 머무는 기업과 ‘Management of ESG’로 전환한 기업 간의 격차는, 이제 ‘평가 점수’의 차이가 아니라 중장기 기업가치의 차이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ESG가 경영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할 때에야 기업은 단기 성과와 중장기 가치 사이의 균형을 설계할 수 있다. 법치주의가 ‘Rule of law’와 ‘Rule by law’ 사이의 선택 문제이듯, ESG 역시 ‘Management of ESG’와 ‘Management by ESG’ 사이의 선택 문제다.
ESG가 경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순간, 기업은 단기 전략과 성과 관리 논리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상법 개정 논의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를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명확히 확장하려는 흐름은, ESG 경영과 맞물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ESG를 경영의 수단으로 소비하는 ‘Management by ESG’에 머무를 것인지,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규율하는 원칙으로 작동하는 ‘Management of ESG’로 전환할 것인지는 각 기업이 감당해야 할 선택의 문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