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2026 북중미 월드컵의 32강 진출국이 모두 가려졌다. 한국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며 끝내 본선 토너먼트 무대를 밟지 못했다.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한 이번 대회는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3개국이 함께 개최하는 대회다. 참가국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되고, 32강 토너먼트가 도입되는 등 대회 운영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이뤄졌다.
경기 규칙에도 달라진 점이 적지 않다. 전·후반 각각 22분이 지나면 3분간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가 주어지고, 스로인과 골킥에는 5초 카운트다운이 적용된다. 상대 선수와 언쟁을 벌이면서 입을 가리고 말할 경우 즉시 퇴장시키는 이른바 ‘비니시우스 규정’도 선수들이 새롭게 익혀야 할 변화 중 하나다.
규정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경기를 읽는 방식이다. 정상급 공격수들은 공이 있는 곳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수비수 뒤에 곧 열릴 ‘뒷공간’을 먼저 바라본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처럼 보이지만, 몇 초 뒤에는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비수가 눈앞의 공만 쫓는 순간 등 뒤의 공간은 열리고, 그 한 번의 판단 착오가 실점으로 이어지곤 한다.
기업 경영도 다르지 않다. 현재의 매출과 이익만 바라보는 기업은 눈앞의 공만 쫓는 수비수와 같다. ESG는 아직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은 미래의 위험과 기회, 즉 기업의 '뒷공간'을 읽는 도구다.
과거 투자자들은 재무제표상의 숫자를 중심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했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이었다. 말하자면 투자자들의 시선은 기업의 '보이는 공간'에만 머물러 있었다.
ESG가 기업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으면서 투자자의 시선은 재무제표를 넘어 기업의 지속가능성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시장은 얼마나 많이 벌고 있는가보다 앞으로도 계속 벌 수 있는 기업인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할 역량은 충분한지, 공급망은 안정적인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할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는지, 이사회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기업의 미래가치를 결정할 ESG라는 '뒷공간'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가치의 원천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화 시대 기업의 경쟁력은 공장, 설비, 토지와 같은 유형자산에서 나왔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와 지속가능성 시대에는 브랜드 가치, 기술혁신 역량, 데이터, 인적자본, 조직문화, 이해관계자의 신뢰 같은 무형자산은 물론 자연자본까지 기업 가치를 설명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의 가치 상당 부분이 재무제표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 비재무적 자본에서 비롯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SG는 ‘보이지 않는 자산’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대표적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투자자들이 ESG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강화되는 탄소규제로 인해 미래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노동·인권 리스크를 방치한 기업은 생산성과 평판에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취약한 지배구조는 경영 실패와 기업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에는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았던 요소들이 투자자가 가장 먼저 살펴보는 핵심 위험요인이 됐다.
ESG 역량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된다. 에너지 효율화와 친환경 기술은 비용 절감과 신규 시장 창출로 이어질 수 있고, 우수한 인적자본 관리와 투명한 거버넌스는 기업의 혁신 역량을 높인다. ESG를 잘하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기업으로 평가받으며, 이는 자본조달 비용 감소와 기업가치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역시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한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중심으로 구축되는 글로벌 공시체계는 기업이 재무정보뿐 아니라 ESG 정보까지 체계적으로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투자자들은 재무제표와 지속가능성 공시를 함께 읽으며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평가하고 있다.
이는 기업 경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ESG를 규제 대응이나 사회공헌 활동으로 인식하는 기업은 여전히 눈앞의 공만 쫓는 수비수와 다르지 않다. 반면 ESG를 미래 경쟁력과 기업가치의 핵심 요소로 이해하는 기업은 투자자가 바라보는 '뒷공간'까지 읽고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기업이다.
축구 경기의 승패가 상대의 ‘뒷공간’을 누가 먼저 읽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듯, ESG 시대 기업의 성패 역시 투자자가 바라보는 미래의 공간을 얼마나 먼저 이해하고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재무제표가 기업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는 언어라면 ESG는 기업의 미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보여주는 언어다.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리스크, 산업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ESG는 기업의 숨겨진 가치와 잠재적 위험을 읽어내는 새로운 투자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
ESG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하는 자본시장의 공통 언어이자 지속가능한 경쟁을 위한 새로운 게임의 룰이다. 축구에서 ‘뒷공간’을 먼저 읽는 팀이 승리하듯, ESG를 먼저 이해하고 내재화한 기업이 미래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