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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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칼럼] 공시 의무화 앞둔 ESG 오디세이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6-08-18 16:02:15 조회수 29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최근 영화계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가 화제다. 호메로스의 고대 서사시를 스크린으로 옮긴 이 작품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신들의 분노와 수많은 시련을 헤쳐 나가는 10년간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내용만이 아니다. 놀란 감독은 컴퓨터그래픽(CG)에 의존하기보다 실제 촬영과 현장감을 중시하는 제작 방식을 고집해 왔다. 빠르고 편한 길 대신 시간과 노력, 기술적 집요함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오디세이인 셈이다.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이름에서 비롯돼 오늘날 수많은 난관과 유혹을 헤치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뜻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기업의 ESG 경영 역시 하나의 오디세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출항했다고 해서 순풍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와 탄소규제, 공급망과 인권, 산업안전, 생물다양성, 기술혁신과 AI, 기업지배구조 등 수많은 위험과 이해관계가 기업의 항로를 끊임없이 흔든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재무제표만으로 기업가치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한때 재무제표 밖에 머물던 환경·사회·지배구조의 문제가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오디세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전통은 ‘크세니아’다. 낯선 이방인과 손님을 환대하고 보호하며, 손님 역시 주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의 상호적 의무다. 크세니아를 오늘날 기업의 언어로 바꾸면 주주뿐 아니라 고객과 임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신뢰와 책임에 가깝다. ESG 역시 기업 혼자 완주하는 항해가 아니라 이해관계자와의 신뢰를 지키며 함께 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이 항해에는 오디세우스가 만났던 ‘세이렌’처럼 기업을 유혹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단적인 예가 ‘단기성과’다. 환경과 안전에 대한 투자를 미루면 당장의 이익은 높아질 수 있고, 공급망의 인권 문제를 외면하면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장기적인 지속가능성보다 분기 실적에 집중하는 편이 어쩌면 훨씬 손쉬운 선택처럼 보인다. ‘그린워싱’도 또 다른 세이렌이다. 실질적인 경영 변화 없이 친환경 이미지를 포장하거나 일부 성과만 부각해 지속가능성을 과장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평판을 높일 수 있지만, 실제 경영과 공시 사이의 괴리가 드러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치명적인 암초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놀란 감독의 제작 방식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CG로 손쉽게 구현할 수 있는 장면조차 실제 촬영을 통해 만들어내려는 그의 원칙은 ESG 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경영의 변화 없이 보고서와 홍보만으로 ESG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영화의 배경을 그럴듯한 CG로 채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작품을 완성하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제 데이터를 만들고, 실제 경영을 바꾸며, 실질적인 성과를 축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ESG 정보를 재무정보에 준하는 신뢰성 있는 경영정보로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ESG 정보 역시 투자자의 의사결정과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탄소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 산업재해, 공급망 인권 등의 정보가 기업의 위험과 기회를 판단하고 미래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데 활용된다면, 그 정보의 신뢰성을 뒷받침할 내부통제와 독립적인 검증 체계 역시 중요해진다.

ESG 공시의 핵심은 ‘무엇을 말하느냐’에서 ‘그 말을 어떻게 입증하느냐’로 이동해야 한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었듯, 기업에도 단기성과와 그린워싱의 유혹을 이겨낼 ‘자기규율 예방체계’가 필요하다. ESG를 경영전략과 투자, 의사결정과 성과평가에 내재화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키클롭스’는 또 다른 ESG 위험을 상징한다. 거대한 괴물 앞에서 오디세우스는 힘이 아닌 지혜와 전략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기업이 마주한 기후변화와 공급망 리스크, 에너지 전환과 산업안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비용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만으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데이터를 활용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ESG 위험과 기회를 새로운 사업과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타카를 잊지 않는 것이다. ESG의 목적은 ESG 자체가 아니다. ESG 평가등급을 높이며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것 역시 최종 목적이 될 수 없다. 모두 ‘지속가능한 기업가치’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과거 기업가치가 재무성과를 중심으로 평가됐다면 ESG 시대의 기업가치는 재무성과와 비재무적 요인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입체적 가치다.

손쉬운 홍보와 그린워싱으로 지속가능성을 위장하는 것은 빠른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 ‘신뢰’라는 암초를 만난다. 반면 데이터와 내부통제, 독립적인 검증을 통해 한 단계씩 신뢰를 쌓아가는 길은 더디고 비용도 든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기업가치라는 목적지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다.

ESG 경영의 항해에도 폭풍은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폭풍이 없는 항해가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항해일지 모른다. 세이렌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ESG 정보를 투명하고 검증 가능한 경영정보로 관리하는 기업만이 지속가능한 기업가치라는 이타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오디세이는 단순히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돌아갈 곳을 잊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을 지탱하는 것이 크세니아가 상징하는 관계와 신뢰의 질서라면, 오늘날 기업의 ESG 역시 이해관계자와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ESG는 목적지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기업이라는 이타카를 향해 가는 긴 오디세이다. 그리고 그 항해에서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순풍을 만났을 때가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원칙과 신뢰를 지키며 올바른 방향을 선택할 때 비로소 증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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