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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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칼럼] 공시 비례성 vs 정보 유용성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6-09-28 11:08:57 조회수 25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지속가능성(ESG) 공시가 자율공시에서 의무공시로 전환되면서 기업의 관심사도 달라지고 있다. '무엇을 공시할 것인가'를 넘어 '어느 수준까지, 어떤 방법으로 공시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 '비례성 메커니즘이 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IFRS S1·S2에 반영한 개념으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KSSB)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비례성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모든 기업에 동일한 수준의 데이터와 분석 역량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전문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고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할 수 있지만, 중견·중소기업은 데이터 접근성과 전문인력, 시스템 구축 여력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기업이 처한 상황과 데이터 접근성, 기술과 역량, 합리적으로 투입 가능한 비용과 노력 등을 고려해 정보 산출 방법과 정밀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비례성을 '공시를 덜 해도 되는 면책 조항'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ISSB가 말하는 비례성은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를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정보라면 원칙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다만 정보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기업이 보고일 현재 과도한 비용이나 노력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뒷받침 가능한 정보'와 기업이 보유한 기술·역량·자원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Scope 3 온실가스 배출량이다. 글로벌 공급망을 가진 대기업조차 다층적 협력업체의 정확한 탄소배출 데이터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데이터 인프라가 부족한 중견·중소기업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데이터가 없으니 공시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합리적으로 확보 가능한 데이터를 활용하고 필요하면 적절한 추정치를 사용하되, 그 방법과 가정, 데이터의 한계와 불확실성을 투명하게 설명하며 이용 가능한 최선의 정보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상 재무효과도 마찬가지다.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가 향후 기업의 자산·매출·비용·현금흐름 등에 미칠 영향을 정량적으로 예측하려면 상당한 데이터와 전문적인 모델링 역량이 필요하다. ISSB는 정량정보가 별도로 식별되지 않거나 측정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높아 유용하지 않은 경우, 또는 필요한 기술·역량·자원이 없는 경우에는 일정한 조건 아래 정량정보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량화가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정성적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기업의 공시 부담을 줄이는 것이 투자자의 정보 유용성까지 낮춰도 된다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비례성은 기업 규모에 따라 정보의 중요성을 달리 판단하는 원칙이 아니다. 같은 위험이라도 대기업에는 중요하고 중소기업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와 역량, 정보의 성격과 측정 불확실성, 투입 가능한 비용과 노력 등을 고려해 정보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조정하는 원칙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시 비례성과 정보 유용성 사이의 균형이 중요해진다. 기업에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공시를 요구하면 수용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형식적인 공시를 양산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의 부담만 지나치게 고려하면 정보의 충실성과 비교가능성이 훼손돼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사라질 수 있다. 결국 지속가능성 공시제도의 성패는 이 두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국내 기업의 현실과 준비 수준을 고려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것'과 '투자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를 줄이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비례성을 폭넓게 적용하는 대신, 기업이 어떤 정보와 방법론을 사용했고 무엇을 추정했으며 어떤 데이터가 부족했고 그로 인해 어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례성이 정보의 질을 떨어뜨리는 장치가 아니라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비례성이 영구적으로 낮은 공시 수준을 보장하는 원칙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의 데이터·시스템·전문인력과 공시 경험이 축적되면 합리적으로 확보 가능한 정보와 분석 역량도 달라진다. 기업의 역량이 높아지는 만큼 공시 수준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이것이 비례성을 단순한 '기업 부담 완화'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자본시장에서 의미 있는 정보로 기능하려면 정보의 유용성과 비교가능성,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재무공시가 오랜 기간 자본시장의 핵심 정보 인프라로 자리 잡은 것도, 투자자가 기업을 비교하고 미래 현금흐름과 위험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ESG 공시도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가 기업가치와 미래 현금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시정보의 양이 아니라,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얼마나 충실하고 신뢰성 있게 제공되느냐다. 따라서 비례성은 '공시의 양을 줄이는 원칙'이 아니라 '공시의 실효성을 높이는 원칙'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업의 역량을 넘어서는 과도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일률적으로 요구하지 않되,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정보의 흐름은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례성의 핵심은 '덜 공시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정보는 놓치지 않으면서 기업의 현실에 맞는 방법으로 공시하는 것이다. ESG 공시가 기업의 홍보용 스토리텔링을 넘어 자본시장의 정보 인프라로 자리 잡으려면, 기업에는 합리적인 부담을 요구하면서도 투자자에게는 유용하고 비교 가능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의 수용성은 높이되 정보의 유용성은 낮추지 않는 것이 비례성의 올바른 설계와 적용이며, 의무공시 시대 지속가능성 공시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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