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한스경제 이치한 ESG행복경제연구소 소장 |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連理枝)’가 되기를 바란다고 읊었다.
비익조는 암수가 각각 한쪽 눈과 한쪽 날개를 지녀 서로 의지해야 날 수 있는 상상의 새다. 연리지는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로 이어진 것을 뜻한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하며 더 강한 생명력을 만들어낸다는 상징이다.
오늘날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연리지를 닮았다. 오랫동안 기업은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등 재무성과를 중심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재무제표의 숫자 너머를 살펴야 한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아우르는 ESG는 기업의 평판을 높이는 부가적 요소를 넘어, 재무성과와 맞물려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재무성과는 기업이 거둔 성과와 현재의 재무 상태를 보여준다. 비재무성과는 그 성과를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을 드러낸다. 어느 하나만으로 지속가능한 기업가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연결되듯, 두 성과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형성한다.
지속가능성 공시의 확대 역시 이러한 연결을 중시한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기준은 기업의 전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를 투자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핵심은 ESG 활동을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그 활동이 기업의 현금흐름과 자금조달, 장기적인 경쟁력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ESG는 사회공헌 실적을 평가하는 잣대를 넘어 경영과 자본시장의 언어가 된다. 기후변화 대응 전략과 공급망 배출량 관리, 인권경영, 정보보안, 내부통제, 이사회의 감독체계는 모두 기업의 미래를 판단하는 단서다. 기업이 위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변화 속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ESG 지출을 당장의 비용으로만 볼 수는 없다. 생산설비와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미래의 매출을 준비하듯, ESG 투자는 기업의 신뢰와 위기 대응 능력을 축적한다. 기후변화 대응은 탄소규제에 따른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안전보건 투자는 산업재해 위험을 낮춘다. 윤리경영과 투명한 지배구조는 투자자의 신뢰를 높여 자금조달 여건을 개선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물론 ESG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지출이 기업가치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사업 특성과 핵심 위험에 맞는 과제를 선택하고, 투입한 자원에 비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점검해야 한다. 선언과 홍보에 머무는 ESG는 비용으로 남지만, 사업 전략에 녹아든 ESG는 경쟁력을 높이는 투자가 될 수 있다.
기업가치 제고, 이른바 밸류업도 같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은 주주환원의 중요한 수단이다. 여기에 지속가능한 수익성과 효율적인 자본배분, 투명한 의사결정이 뒷받침돼야 기업가치 제고의 효과도 오래갈 수 있다.
ESG와 밸류업은 각각 강조점이 다르지만,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를 높인다는 목표에서 맞닿는다. 재무적 투자와 ESG 전략을 서로의 성과를 잠식하는 ‘카니발라이제이션’ 관계로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인 충돌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ESG를 투자와 경영의 판단 기준에 제대로 반영하면 수익성과 위험관리의 질을 함께 높일 수 있다. 생산능력을 확대하면서 에너지 효율과 안전 수준을 높이는 투자가 그 예다. 나무가 오래 자라려면 가지를 뻗는 만큼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 기업도 외형 성장과 함께 위기를 견딜 체력을 길러야 한다. 수익을 창출하는 능력에 신뢰와 회복탄력성이 더해질 때 다음 성장의 기회도 넓어진다.
연리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함께 자라며 맞닿은 가지가 이어져야 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도 마찬가지다. 재무성과와 비재무성과를 꾸준히 축적하고, 이를 투자와 사업 운영, 지배구조에 연결해야 오래 성장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재무제표가 기업가치를 판단하는 출발점이라면, 지속가능성은 그 가치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ESG는 사회적 책임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의 현금흐름을 지키며 성장 기회를 넓히는 경영전략이 되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은 재무성과와 ESG를 함께 키운다. 서로 다른 나무가 하나로 이어진 연리지처럼, 수익성과 책임 있는 경영이 서로를 지탱할 때 기업가치는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오래 지속된다.
이처럼 ESG는 기업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다. 미래의 위대한 기업은 단지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니라, 재무성과와 사회적 책임 있는 경영을 단단히 연결해 건강한 연리지를 키워낸 기업으로 기억될 것이다.